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귀인 정씨(성종) (문단 편집) === 폐비 윤씨의 정적? === >지난 정유년 3월 20일에 "[[귀인 엄씨|엄 숙의]](嚴淑儀)가 정 숙용(鄭淑容)과 더불어 [[폐비 윤씨|중궁]] 및 [[연산군|원자]]를 모해(謀害)한다"는 글 두 통과 비상(砒礵) 약간과 압승책(壓勝冊) 한 권을 작은 상자에 담아 가지고 백저포(白苧布) 보자기로 싸서, 권 감찰(權監察)의 집 사람이라 일컫고 권 숙의(權淑儀)의 【권 숙의는 덕종(德宗)의 후궁으로, 여러 숙의를 총괄하여 다스렸다.】 집에 던졌는데, 권 숙의의 집 사람이 그 상자를 가지고 대궐에 나아와서 숙의에게 바쳤다. > >---- >《[[성종실록]]》 성종 10년 6월 5일 1477년(성종 8) 한 통의 투서가 [[의경세자|덕종]]의 후궁인 권 숙의의 집안에 떨어졌다. 투서의 내용은 "엄 숙의가 정 숙용과 더불어 중궁과 원자를 모해한다"는 것으로 깜짝 놀란 권 숙의가 익명서를 위에 바쳤다. 처음에는 정씨가 의심 받았지만, 당시 [[인수대비|대비전]]과 [[성종(조선)|성종]]은 곧 [[폐비 윤씨|왕비 윤씨]]의 자작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.[* 투서는 폐비 윤씨의 [[동복형제|동복오빠]] 윤구의 아내, 여종 삼월, 사비를 [[창덕궁|창덕궁 구현전]]에서 문초한 결과 폐비 윤씨 측의 자작극으로 밝혀진다.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ia_11006005_004|#]] ] 이외에 여러가지 일로 믿음을 잃은 왕비는 폐출되어 사가로 쫓겨나게 된다.[* 이미 [[폐비 윤씨|왕비 윤씨]]가 쌓아놓은 업보들이 --장난 아니게 많이-- 있었다. 특히 윤씨는 [[성종(조선)|성종]]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고 연비, 즉 불로 팔을 지져서 맹세하는 의식을 하겠다고 맹세한 적도 있었는데 그 맹세가 다 거짓말이었다는걸 몸소 보여준 격이었다.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ia_11006005_004|#]] ] 사실 정씨가 귀인 엄씨와 함께 원자의 생모이자 왕비를 직접적으로 해치거나 모함한 일은 없다. 하지만 이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렸기에 [[연산군]]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.[* 애초에 성종의 후궁이 한두 사람도 아닌데, 폐비 윤씨가 콕 찝어서 '엄 숙의'와 '정 숙용'이라고 투서에 썼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